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세 페르난데스(1992) (문단 편집) === 15세의 망명자 === [[쿠바]] 산타 클라라에서 5살 때부터 나뭇가지를 꺾은 배트로 야구를 즐기곤 했던 페르난데스는 [[메이저 리그 베이스볼]]에 오기까지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. 그의 의붓아버지이자 의료업에 종사하고 있던 라몬 히메네즈는 일전에 직업상의 이유로 [[베네수엘라]]로 의료 선교를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[* 사실 쿠바의 봉급수준 자체가 이중화폐정책의 영향으로 심하게 박봉(물론 쿠바에서는 평범한 수준이다.)인데, 해외로 파견근무를 갈 경우에는 쿠바에서 벌던것보다 10배 가량의 봉급을 받을수있는데다가 돈을 제대로 모으기만 하면 기본물가가 싼 쿠바의 특성상 꽤나 부유하게 살수있기에 해외근무 선호도가 높다.] 이를 쿠바 정부에서 망명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허가해주지 않았다. 그 사건으로 인해 히메네즈는 자신들이 마치 감옥에 있는 것처럼 자유를 탄압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고, 13번의 실패를 겪은 끝에 2005년 가족을 쿠바에 남겨두고 탈출에 성공해 [[플로리다]]주 탬파에 정착했다. 탈출한 의붓아버지를 본 페르난데스는 미국에서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고,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, 누이와 함께 14살의 나이로 탈출을 시도하게 되었다. 그리고 그들의 세 차례에 걸친 [[마이애미]]로 향한 표류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. 미수에 그친 페르난데스는 학교에서도 퇴학당했고, 야구팀에서도 쫓겨났으며, 결국 탈주자 신분으로 쿠바의 수용소에서 몇 달 간 살인범같은 흉악 재소자와 함께 수감되기도 했다. 본인의 말에 의하면, 다시는 그 좁은 곳에서의 갇혀진 생활이나 그곳의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고. 감옥에서 풀려난 페르난데스는 탈출 계획을 수정했다. 저번처럼 쿠바 북쪽의 해안에서 [[마이애미]]를 향해 출발하는게 아니라, 더 멀긴 해도 경비가 허술한 쿠바 남쪽 해안에서 [[멕시코]]를 경유하기로 한 것. 남쪽 해안 동굴에서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페르난데스는 이내 그의 어머니, 누이와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쿠바를 탈출하기 시작했다. 거센 파도로 인해 그의 어머니가 바다로 휩쓸리는 걸 물에 뛰어들어 구해내기도 하고, 해안경비대에게 총격을 당하기도 하며, 뱃멀미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2008년 그와 그의 어머니, 누이는 마침내 멕시코를 거쳐 미국 [[텍사스]]주에 도착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